Ashcroft 애쉬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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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Somerset

Inspired by Seven, 1995

2020.02.05



Inspired by William Somerset

"바로 그때 정신을 차려 보니(mi ritrovai) 어느 어두운 숲을 하염없이 걷고(per una selva oscura) 있었다."

단테는 [신곡]에서 서른 다섯 자신의 심정을 이러한 내용으로 표현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정신을 차려보니 길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서른 다섯이란 몸과 마음의 전성기를 가리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리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지요. 오늘날 이 시기는 <거친 여명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 다음에 오는 흔들리지 않는 불혹과 자연의 순리를 아는 지천명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전성기일지도 모릅니다.






윌리엄 서머셋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만든 <세븐>에 등장하는 인물로 은퇴를 앞두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경찰 전체의 신뢰를 받는 노련한 형사입니다. 그의 일과는 일정한 규칙 속에서 진행됩니다. 정시에 일어나 정돈된 물건들로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서는 사건 현장에 나서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범죄의 흔적을 찾으려 할 때 혹은 범죄자의 행위를 이해하려 할 때 안경을 꺼내 쓰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인물입니다. 그와 함께 젊고 격정적인 형사 밀스가 있습니다. 윌리엄 서머셋의 후임으로 들어온 인물이지요.





<세븐>은 '7대 죄악'을 현실에서 재현하려는 범죄자와의 대결을 그린 영화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지옥의 입구임을 보여주려는 영화입니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지옥의 입구가 우리가 사는 세계 어딘가에 세워져 있다고 말합니다. 황무지 어딘가에 있는 그 문을 통하면(per me) 지옥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 그 사실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서머셋입니다. 아마도 인간의 마음을 그리던 작가 <윌리엄 서머셋 몸> 으로부터 빌려왔을 이 이름은 지옥과 마음이 곧바로 연결됨을 암시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유명한 구절입니다.

윌리엄 서머셋은 밀스의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이런 세상에서는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세계야말로 지옥 같은 곳이라는 판단 때문이며, 이후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나는 무관심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무관심은 타인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비극을 무시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per me)들이 이 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여기서 'per me'는 나를 통과하여로 읽을 수도 있지만 '나로 인하여'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주 사소한 나의 행동이 타인에겐 지옥의 입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윌리엄 서머셋은 장년의 나이에 우리가 우리의 지옥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은 인물입니다. <세븐>의 세계는 모든 색이 지워진 듯한 세계입니다. 여기서 윌리엄 서머셋은 짙은 회색 재킷에 옅은 카키색에 가까운 코트를 입고 있습니다. 특히 이 카키색 코트는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황무지의 색과도 유사합니다. 이는 윌리엄 서머셋이 이 황무지와도 같은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상징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윌리엄 서머셋은 실패한 베르길리우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천국의 문 앞까지 이끌며 모든 것을 설명하는 스승이지만, 윌리엄 서머셋은 그러한 스승의 위치에서 곧바로 밀스와 같이 눈앞의 사건에 골몰하는 위치로 내려섭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행동은 윌리엄 서머셋이 이후로는 안경을 쓰지 않은 것으로 표현됩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말이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단적으로 눈은 빛을 받아들이는 신체 부위입니다. 눈은 빛 입자를 받아들이고, 시신경은 이를 뇌로 보낸 다음 사물의 상을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지죠. 이를 다른 상징적인 말로 표현하면 눈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입구이며, 이 세계는 나의 마음속에서 구성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안경은 생각보다 중요한 물건입니다. 안경은 나의 마음속에 일그러져 들어오는 세계를 다시 반듯하게 세워주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한탄, 슬픔의 소리, 격렬한 규환. 별 없는 하늘에 메아리치니. 나는 이내 눈물을 흘렸노라"

아마도 이 구절이야 말로 윌리엄 서머셋의 마지막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구절이 아닐까 합니다. 지옥이란 일체의 바람도 희망도 없는 곳입니다. 영화 속에서 살인자 존 도우가 마지막에 밀스 형사에게 한 짓이 바로 그런 짓이죠. "Questi non hanno speranza di morte(그들에게는 죽음의 희망조차 없으니)" 밀스가 존 도우에게 아무리 분노를 토해봤자 이미 그에게는 모든 희망과 바람이 지워져버린 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다음 영화는 곧바로 어둠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바로 단테가 여행을 시작하는 바로 그 어둠 속인 것이죠.




영화 속에서 존 도우가 벌이는 살인은 [신곡]의 모방이랄 수 있습니다. 신곡의 지옥과 연옥은 같은 죄를 루시퍼를 중심으로 접어놓은 데칼코마니 구조입니다. 다만,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실낙원]을 통해 루시퍼를 모방하고 있는 존 도우가 대체로 연옥의 가장 높은 단계의 죄에서 그 아래로 내려오는 형태의 죄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구원의 희망을 꺾어가며 점차 지옥으로 향하는 모습이라 볼 수 있지만 반면에 루시퍼처럼 끝없이 빛을 지향하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옥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오면 그곳에 있는 것은 죄의 처벌을 기다리는 인간들입니다. 윌리엄 서머셋은 또 그곳에서 누군가를 구원하려고 애쓸 게 분명합니다. 그가 영화의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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