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hcroft 애쉬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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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Chinaski

FACTOTUM, a novel by Charles Bukowski

2020.02.24



찰스 부코스키는 1920년 독일 Andernach에서 Heinrich karl Bukowski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헨리 부코스키는 독일계 미국인이었고 미국 육군 중사로 미국에 정착하였다.
친구의 누나인 카타리나와 바람을 피다 임신했고 찰스 부코스키가 출생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부코스키의 아버지는 건물 계약자가 되어 재정적으로 큰 이익을 얻고 독일로 돌아갔지만
경제가 정체되어 있고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독일의 배상금 요구로 더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1930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청소년기의 찰스는 고쳐지지 않는 독일어 억양, 극도로 심했던 여드름, 독일계 부모님의 옷차림 때문에 학급에서 왕따를 당했고, 실업 상태였던 아버지의 상상을 초월한 학대를
견디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로인한 우울증은 그가 성장함에 따라 분노를 일으켰고, 10대 초반부터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는데, 알코올이 자신을 우울증에서 도와줄 것이라 생각했다.




(FACTOTUM, 2005)


고등학교를 졸업 한 찰스 부코스키는 로스 앤젤로스 시립 대학에서 2년 간 수학, 미술, 저널리즘 및 문학 과정을 이수. 자퇴 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봐도 문학계에 진입하지 못하는 과정에 환멸을 느끼고 거의 10년 동안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이 기간 중 그는 피클 공장, 우체국에서 우편사무원과 집배원, 잡역부,
철도 노동자, 트럭 운전사, 경마꾼 등 본인도 다 기억할 수 없는 일들을 했으며, 매일 술을 마셨다.

돈이 떨어져 타자기를 팔아 술을 마시다, 심각한 출혈성 궤양으로 항문과 입에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나와 자선병동에 입원했다. 다시 술을 마시면 죽는다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여전히 술을 마셨고, 우체국에서 49살 까지 일을 하다가 잦은 결근과 지각으로 해고당하기 직전 부코스키는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동안 매달 1백 달러를 지급하겠다는
Black Sparrow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우체국 업무를 그만두고 풀 타임 글쓰기에 전념했다.

대표작으로 우체국에 들어가기 전 잡역부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팩토텀', 어느정도 명성을 얻은 중년 이후의 삶을 주제로 한 '여자들'이 있다. 데뷔작인 우체국을 포함한
이 3권은 부코스키 3연작으로 불린다. 찰스 부코스키는 1994년 3월 9일 San Pedro에서 73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묘비에는 'Don't Try'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미국의 소설가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속 페르소나인 헨리 치나스키에 대한 안경을 만들었습니다.

안경의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찰스 부코스키라면 이런 안경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세수 같은 걸 하지 않고도 뉴욕이든, LA던 나발이던 눈치 안 보고 돌아다녀도 될만한 멋진 안경이 하나 필요했다. 애쉬크로프트인지 뭔지"

주류와 비주류. 어떤 일들은 세계 속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게 훌륭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유명해지거나, 굶어죽거나, 그 중간을 견뎌 나가거나.

세계는 증명을 요구합니다. 그게 왜 멋진 것인지 한 번 설명해 보라고 하지요. 마치 뭔가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이 부담스러운 질문 앞에, 하는 수 없이 중얼중얼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다 보면, '그런 것 말고'라는 얘길 듣게 됩니다.
대답하는 저도, 이 이유를 말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답같은 것이 따로 있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그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심술이 나니까요. 눈치 빠르게 답을 빨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순발력이 좋다.'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보편적인 정서를 캐치한 후, 이쁘장한 말을 잘 찾아내는 능력에 대해 '감각이 있다.'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에는 이런 것들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괴상함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좋게 말하자면,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그런 일들은 어떻게 보면, 약간 눈치가 보이는.
이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혼자 서 있는 것처럼 어딘가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번 더 곤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 불편한 불청객 같은 취급을 스스로 의식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원래 지내왔던 대로 웃어넘겨버려야 하는건가. 정도를 지나치게 되면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고,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에도 뻘쭘하고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기분 때문에 자존감이 저하되는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아, 나도 몰라. 하면서 억지 웃음같은 걸 짓더라도, 일단은 이 상황 앞에 자연스러운 척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잘난 척이건, 못난 척이건, 아닌 척이던간에.
어떤 -척을 해야 하는 것은 뭔가 불편합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이런 감정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의연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스스로에게 증명같은 걸 요구하지도 않았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어떤 -척 같은 걸 하지 않아서,
뭐 괜찮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라고 해도 될 것 같은 힘. 뭔가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어떤 폼을 잡지 않아서, 글도 담백하고, 시원시원한 청량감이 있습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1994년 3월 9일 San Pedro에서 73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Don't Try(하지 마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애쓰지 마라.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기다려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좀 더 기다려라.
기회, 그건 벽 높은 데 있는 벌레 같은 거다. 그게 너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라. 그러다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팔을 쭉 뻗어 탁 쳐서 죽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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