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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A desperate writer

2020.04.24



헤르만 헤세는 “위기의 작가”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분석하고, 자신의 실제적인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는 시인으로 유명하죠.

소위 ‘내면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고 또한 일관되게 주장했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도대체 왜 헤세는 자기 자신을 찾아 계속 방황했던 걸까요?

그의 인생에는 과연 어떠한 사건들이 있었던 걸까요?



헤세의 굴곡 많은 인생에는 크게 세 번의 극단적인 위기가 있었습니다.


처음은 15살 때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민한 감수성과 조숙한 기질을 보여주던 헤세는 자주 고집을 부리고 반항해서 어머니마저 ‘헤세의 폭군적 기질을 두려워할’ 지경이었다고 하는데요. 신학교에서 행해졌던 엄격한 경건주의적 훈육은, 일찍이 자신이 천재임을 예감했던 헤세에게는 답답하고 멍청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헤세는 자주 불만을 드러내며 반항하고, 말썽을 부렸습니다. 부모의 은근한 압박에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헤세는 이미 13살 때부터 마음속으로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었다고 합니다. 그런 헤세에게 학교는 ‘정해진 답’만을 강요하는 감옥이었죠.

입학한 지 불과 6개월 되었을 때 헤세는 결국 학교에서 탈출합니다. 경관들이 거의 하루 동안의 수색작업을 한끝에, 외투도 입지 않은 채 추위에 떨던 그를 발견했고, 헤세는 부모와 선생들에 의해 정신 요양원으로 보내집니다. 그곳에서 그는 반항과 분노가 극심해져, 돈을 빌려 권총을 사는 등 자살 소동을 벌이게 됩니다.

후에 헤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레바퀴 아래서>를 집필합니다. 헤세에게 ‘학교’라는 곳은, 창의성이 샘솟는 어린 새싹과도 같은 소중한 정신들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잔혹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재능이 많은 아이들은 헤세가 그랬던 것처럼 반항아가 되거나, 아니면 결국 창조력의 뿌리가 뽑힌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헤세는 이렇게 억압받은 청소년기가 굉장히 큰 트라우마로 남았고, 인생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그의 여러 작품에 이 시기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

헤세의 작가로서의 활동 첫 15년의 작업은 바로 그 청소년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그때의 체험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듯이 학교마다 법규와 정신의 싸움판이 자꾸 되풀이되고 있다.
국가나 학교가 해마다 새롭게 자라나는 보다 귀중하고 심오한 젊은이들을
뿌리째 뽑아버리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더욱이 선생들에게 미움이나 벌을 받은 학생들, 학교에서 도망치거나 내쫓긴 학생들,
바로 이들이 후세에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재산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러는 무언의 반항심과 더불어 자신을 소모하고, 마침내 파멸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과연 이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누가 알겠는가!

수레바퀴 아래서 中



헤세의 두 번째 위기는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닥쳐왔습니다.

전쟁은 감수성이 예민한 헤세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그 당시 이미 작가로서 명성이 있었던 헤세는 반전 평화사상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조국 독일 사회로부터 ‘배반자’, ‘매국노’ 같은 극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중병에 걸린 막내아들, 결혼생활의 위기, 아내의 정신질환, 결정적으로 1916년에 당한 부친상 등 개인적인 가정사가 더해져 헤세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이때 헤세 나이 39세였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헤세의 사춘기 때부터 내내 극복해야 할 억압의 상징이었지만, 내심 아버지의 위로와 인정을 원하고 있던 헤세는 이제 그럴 수 없다는 절망감과 죄의식으로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이 죄의식은 후에 <데미안>에서 ‘이 꿈들 중 가장 무서운 꿈, 내가 반은 미쳐서 깨어나는 꿈은 아버지를 습격하여 살해하는 꿈이었다.’라는 문장으로 표현됩니다. 헤세는 정신과 의사 랑 박사를 찾아가 융 이론을 토대로 한 정신분석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었는데요.

이 경험을 통해 헤세는 자신의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을 설명 받고 지지 받을 수 있었으며, 죄의식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랑 박사와의 정신 분석 세션을 통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 헤세는 <데미안>을 집필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가장 진부한 대화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내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에서 짓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를 뚫고 마침내 나의 노란색 새가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자유롭게 쳐들어,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데미안中



헤세는 48세에 이르러 우울증이 악화하여 최고조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생활도 실패로 끝나고, 취리히의 한 작은방에서 혼자 살면서 격정과 불면증과 자살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비참함, 자기 연민, 경멸, 위기, 분노, 피해 의식, 냉소, 염세, 혐오와 같은 감정들이 헤세를 휩쓸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 외에도 눈의 통증, 심한 류머티즘 통증 같은 육체적인 고통도 뒤따랐습니다.

헤세는 평소 수줍어하는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즈음 갑자기 돌변하여 관능적 삶을 열망하며 술집과 댄스홀을 출입하고, 재즈를 즐기는 등 극적인 변신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황야의 이리>의 주인공 하리 할러가 바로 헤세 그 자신이었던 겁니다.

<황야의 이리>는 그 당시에 헤세가 경험하고 있던 ‘이리 같은 공격적 본성, 성적 충동, 무소속성’과 ‘인간성, 정신’ 사이의 갈등을 고백한 소설입니다.

<데미안> 이래로 걸어온 내면에로의 길이 마침내 카오스 상태에 다다랐을 때, 혼돈을 직시하며 그 속에서 황금빛 불꽃을 찾아내려 한 시도이자, 그 결과물입니다.



황야의 이리는 언젠가는 자기 자신과 마주 보고 서서, 영혼의 혼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의 의심스러운 존재가 완전히 불변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고, 나아가 충동으로부터 감상적이고 철학적인 위안으로,
그다음엔 다시 이 위안으로부터 이리의 본성에서 나온 맹목적인 도취 상태로 재삼재사 도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인간과 이리는 기만적인 감정의 가면을 벗고 서로 인식하고, 발가벗은 채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둘은 분열되어 영원히 뿔뿔이 갈라져서 더 이상 황야의 이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거나, 아니면 유머의 타오르는 불빛 속에서 계약 결혼을 할 것이다.

황야의 이리中



삶이 그렇게 동요할 때마다 끝에 무언가를 얻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자유, 정신, 깊이 같은 것이었고, 또한 고독,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 냉정함 같은 것이었다.
시민 쪽에서 보면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의 인생은 하나의 지속적인 몰락이었고,
정상적인 것, 허용된 것, 건강한 것에서 점차 일탈하는 것이었다.




헤세는 인생에서 크게 세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에는 그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거름으로 작용했고 인류 문학사에도 큰 결실을 만들어냈습니다.

위기를 겪을 때마다, 헤세의 작품이 읽고 싶어집니다. 그와 같이 내면의 카오스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 방황하다 보면, 희미하게 발하는 빛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헤세는 아주 위험한 작가입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그 이전의 자기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몰락 혹은 구원.

'내면으로의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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